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내전 (문단 편집) ===== 지휘관: 구 제국 출신 친소 장교들 영입 ===== 그리고 고질적인 지휘관 부족 및 군사적 능력 보충을 위해 과거를 묻지 않고 구 제국 장교들을 대거 영입했다(228호 명령).[* 하지만 볼셰비키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았다. 포섭된 백군 출신 장교는 가족이 인질로 잡혔고 불온 행동 시 본인과 가족을 총살하겠다는 협박 아래 입대가 이루어졌으며 [[정치장교]]와 비밀경찰을 통해 행동을 통제당하고 감시받았다.] 대표적인 경우가 [[알렉세이 브루실로프]] 상급대장이다. 브루실로프 장군의 경우 붉은 군대에 가담했던 외아들이 반혁명군에 처형당했던 개인적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를 움직인 것은 바로 [[소비에트-폴란드 전쟁]]이었다. 독립국을 세운 우크라이나의 분리독립을 좌시할 수 없었던 적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대부분을 점령했는데,우크라이나와 폴란드가 동맹을 맺어 폴란드군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원하자[* 자세히 설명하면 우크라이나는 [[브레스트-리토프스크 조약]]으로 독립국인 [[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]]을 수립하여 러시아로부터 분리독립했는데 적군은 1919년 1월 초 괴뢰정권인 [[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]]을 수립하고 그 직후 침공하여 [[키이우|키예프]]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을 점령했다. 이 상황에서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와 동맹을 체결하여 1920년 5월 키예프까지 점령하는 일이 터진 것이다.]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라는 관념이 뿌리박힌 러시아 제국 장교들이 제발로 적군에 찾아와 가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.[* 러시아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. [[블라디미르 푸틴]]은 2009년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백군 장군 [[데니킨]]이 안장된 돈스코이 묘지를 참배하던 도중 '''"데니킨은 우리들(러시아와 우크라이나)의 관계에 어느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고 말했다. 이는 오직 러시아의 권리다."'''라고 언급한 바 있다. 그 정도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분리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. 우크라이나인들의 입장이야 물론 다르지만.] 브루실로프는 아예 트로츠키의 군사고문으로 활동하다가 20년대에 은퇴한 후 자연사했다. 그 외에 [[알렉세이 쿠로팟킨]][* [[러일전쟁]] 당시 러시아군 총대장이었다.] 대장도 적군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백군의 참가 권유를 거부하게 만드는 활동을 벌였다. 하지만 이후 [[대숙청]]의 일환으로 혐의점이 의심되는 여러 장교들이 숙청되거나 감시에 시달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